

무채색의 바다
긴토요카무
겨울이다.
내뱉는 숨은 하얗게 얼어 공기 중에서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은 뺨을 스치며, 끝이 보이지 않는 밤바다는 그저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바다에 왔다.
너와 함께한 추억이 서려있는 그 바다에.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오고 가기만을 반복하는 바다가 무기력한 소리만을 내뱉는다.
너와 함께였을 때와는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푸르고, 밝으며, 청량하던 것이 바다가 아니었는가.
너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렇게 달라도 되는 것인지.
딱히 슬프거나 그립지는 않았지만, 허전하기만은 해서.
밀려든 공허함에 바다를 바라보던 눈을 감고 너를 생각했다.
끊이지 않는 파도 소리가 쉴 새 없이 커지며 나를 덮쳐오는 것만 같다.
사랑은 아닌 너를 향한 감정이 나를 옭아매어, 바닷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은 나도 모르는 새에 차올라 내 숨을 막을 테고, 나는 뒤늦게 허우적거리다 명을 다하겠지.
기이하지, 분명 너를 사랑하는 것만은 아닌데도 내 사인은 너로 인한 것이라니.
너를 피해 해적선에 올라 긴 시간 바다 위와 우주 속을 유영했는데도 이제서야 바다가 두렵게 느껴졌다.
수평선의 이상을 헤엄치는 해적선 주변에 먹구름이 몰려 들어와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다.
긴토키, 이게 너를 저버린 천벌일까.
분명 붉은 노을이 타오를 듯 자리할 하늘은 어두컴컴한 먹구름으로 가득하고, 내리지 않는 빗소리가 들려와.
끝나지 않는 장마 속에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만 웅얼거리듯 울려 퍼지고 있어.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나의 사인은 존재조차 않은 ■■의 익사겠지.
이런 현재는 네가 생각해 본 미래야?
천천히 심해에 잠기듯 숨이 막혀 죽어버릴 나를 생각해 봤어?
너는 우리의 아이를 품에 안고서 행복해하고, 나는 나와 그의 아이만을 곁에 두고서 불행 속에 잠겨 있어.
우리의 아이는 그 이후로 혹여나 소중해질까, 잃는 게 두려워질까 마주한 적도 없는데, 가끔씩 우리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기도 해.
다름이 아닌 너의, 우리의 아이니까.
만나러 가도 될까.
너의 곁을 스쳐지나며 시간이 흐른 너와, 그 옆의 우리 아이를 눈에 담고서 작은 이기심을 채워도 괜찮을까.
애석한 너를 떠올리면 지금의 싸늘하고 진득한 바다가 아닌 그날의 청량한 바다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내가 완전히 물에 빠지기 전에, 너를 만나러 갈게.
네 품에서 익사가 아닌 삶을 끝내고 싶어.
다행이다, 죽음 따위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아서.
너를 잃을 바에는 차라리 그 편이 나으니까.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듯 분홍머리의 그가 뒤에서 인기척을 내어 눈을 뜨니,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우습다는 듯 순식간에 다시 겨울의 바다로 돌아와 있다.
또 긴 시간 해적선을 타고 칠흑 같은 어둠을 누비며, 죽기 직전까지 나는 이곳에 머물러있겠지.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겨울의 바다에,
오로지 너만을 그리며 물거품이 되도록.
끝나지 않을 듯한 영원한 겨울이 옆자리의 그가 아닌 오로지 너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